랑시에르의 미학
랑시에르는 프랑스의 철학자로, 그의 미학은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현대미술을 즐기는 나에게는 특히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이론이었다.
나는 현대미술을 좋아한다. 작품이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해석하고, 그 안에 숨은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찾아내는 걸 즐긴다. 아름다움을 만끽하러 간다기보다, 복잡한 문제와 나를 압도하는 세상을 마주하는 느낌을 즐기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예술의 이런 비판적 역할을 부정한다. 근대와 달리, 현대 사회에는 우리가 모르는, 계몽되어야 할 세상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정보의 바다 속에 사는 우리에게 숨겨진 진짜 세상이나 깨우쳐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외친다면, 그건 음모론에 가깝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체주의와 회의주의를 품고 있다고 자처하지만, 실상은 근대의 모더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는 주장한다.
모더니즘과 달리 계몽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린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중을 가르치려는 자세만 남긴 채 오히려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데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실패로 증명된 사회주의적 이념을 비슷한 방식으로 가져오는 태도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즉 미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진실을 우리에게 깨우치려는 듯 메시지를 남긴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정작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별것 아닌 사실인 경우가 많다.
작가는 메시지를 던지려 하고, 관객은 그것을 받아내려 한다. 현대 미술 시장 자체가 그런 구조다. 현대미술뿐 아니라 고전미술 전시에도, 특별한 메시지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찾는 사람이 더 많다.
남들과 차별화되고 싶은 욕망. 부재하는 지적 우위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우월함을 입증하려는 본능.
나 역시 어쩌면 그렇게 바보가 되기를 즐겼던 것 같다. 나를 압도하는 세상, 내가 이해하지 못할 무언가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으리라 믿고 싶었던 걸까.
돌아보면 지금까지 쭉 공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는 바보가 되고 싶은 것이다. 아직 보지 못한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기대. 새로운 세상을 찾아 헤매는 내 모습도 결국 그런 것 같다.
어쨌든 랑시에르가 부정한 것은 메시지를 던지는 예술이다.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심오한 메시지를 담아야 예술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만들어진 것, 그 모든 것이 예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