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S1025

추운날

2023-10-22 3 min read

추운 날

추위가 서려온다. 내쉬는 숨에 서리는 김이 진해질수록, 비강을 뚫고 들어오는 새벽 공기가 더 뚜렷해진다.

추위는 다른 것들을 지우는 습관이 있다. 향을 지우고 색을 지운다. 형형색색이던 여름 초원이 겨울에 시들듯, 세상의 향과 인상도 흐릿해진다. 감각은 둔해져 추위만 겨우 인식한다.

그런데 이 무뎌진 감각이 오히려 마음을 데울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추위에 서린 감각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집 앞이든 도서관이든, 술 한잔 걸치고 홀로 걷던 서울의 다리든, 손을 맞잡고 체온을 나누던 그날이든. 그 모든 순간에 내쉬는 숨은 같은 인상을 남긴다. 겨울은 어쩌면 추위가 지워버린 세상의 인상을, 사람의 온기로 다시 채우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길.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내쉬며 잠깐 눈을 감아본다. 지나치는 자동차 경적과 붉게 물든 가로등 불빛을 그려본다. 북적이던 성수동의 연말 모임, 그 위를 무심히 지나가던 지하철 소리. 병이 깨지는 소리와 잔이 부딪히는 소리. 트리 한 그루에 둘러앉은 아이들의 기도와, 남은 외로움들에 내쉬는 어른들의 김 서린 한숨까지. 그 모든 거리를, 그 모든 시간을 한 걸음에 걷는다.

요즘 들어 집이 그립다. 그 시절의 감각을 되짚게 하는 차가운 공기를 요즘 다시 마주쳐서인 듯하다. 곧 나가는 날엔, 오늘의 추위를 뜨거운 술 한잔으로 녹여내고 싶다. 저물어가는 연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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