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추운날
2023-10-22
추운날.
추위가 서려온다. 내쉬는 숨에 서리는 김이 진해질수록 비강을 뚫고 들어오는 새벽의 찬 공기가 뚜렷해진다.
추위는 다른 것들을 지우는 습관이 있다. 향을 지우고 색을 지운다. 형형색색의 여름 초원이 겨울에 시들어버리는 것처럼 세상의 향과 인상이 흐릿해진다. 감각은 둔해져 적당한 추위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추위의 감상이 마음을 따듯하게 할 때가 있다. 이것이 모두에게 공평하기 때문이다. 추위에 서린 감각은 어느 장소에서나 다를 것이 없다. 집 앞이든, 도서관이든, 술 한잔 걸치고 홀로 걷는 서울의 다리든, 손아귀를 꼭 잡고 체온을 나누던 그날이든. 그 날들에 쉬는 숨이 남기는 인상은 공평하다. 마치 그 모든날의 감상이 한데 어우러지듯이. 겨울은 추위가 지워버린 세상의 인상을 사람의 온기로 채우는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길. 한껏 차가워진 공기를 마시고 내쉬면서 슬쩍 눈을 감아본다. 지나치는 자동차의 경적과 붉게 물든 가로등의 불빛을 그려본다. 북적한 성수동의 연말 모임과 그 위를 무심하게 지나가는 지하철 소리. 병이 깨지는 소리와 잔이 부딪히는 소리. 트리 한그루에 둘러모인 어린이들의 기도와 외로워질 여생에 내쉬는 어른들의 김서린 한숨까지. 그 모든 거리를, 그 모든 시간을 나는 한 걸음에 걷는다.
부쩍 그리워졌다 집이. 그 시절의 감각을 되짚을 차가운 공기를 요즈음에 마주쳐서 그렇다. 곧 잠시 나가는 날에 오늘의 추위를 뜨거운 술 한잔으로 녹여내고 싶다. 몽글한 연말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