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folio
Essay

연대감

2024-04-04

연대감

연대감. 우리 일상과 사회에 스며들어 사이사이에 끈적하게 묻어있는 느낌이다. 인간은 어쩌면 이 연대감으로 살아가고 사회는 이 연대감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연대감을 갈망하는가? 인간은 왜 홀로 서있을 수 없는가? 우리는 여전히 생존의 효율이라는 셈법 아래에서 집단속에 숨어 지내고 싶은가?

연대감에 취한다면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 없다. 또한 그곳에 정의는 없다.

사랑과 연대는 같은 색이다. 그 속을 들추면 나오는 동질감. 내가 외부로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일부와 약하게나마 동기화 되고 있다는 감각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둘의 결정적인 차이를 묻는다면 전역성과 지역성이라 답하겠다.

연대는 전역적으로 발생한다. 그 범위는 국소적인 각각의 단위에서도 확장되기 때문에 개인의 열맹한 서약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의 색채를 옅게 흐리는 일을 동반한다. 이는 전역성의 본질과 맞닿아 있으며 그 전부이기 때문에 익과 실을 따질 수는 없다.

사랑은 지역적으로 발생한다. 오직 두 명의 사람. 그 사이에서 정의되는 국소적인 상이다. 오직 두 개의 축에 지탱되기 때문에 연대감의 견고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둘 서로의 열맹한 서약을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모든 것이 되어주겠다는 서약. 이는 신. 곧 서로에게 신의 자리를 내어준다는 믿음이다. 따라서 사랑은 일종의 신앙심이다.

사랑은 개인의 색채가 옅어지는 것이 아니다. 둘은 섞여 하나의 색이 된다. 더이상 개인은 존재하지 않고 쌍으로 정의될 뿐이다. 열맹함에 녹아들어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면, 인간에게 영원한 안정과 동질감을 안겨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불안정한 사랑의 기초를 세우기 전에 일종의 연대를 세우려 했는지 모른다. 열맹한 서약을 맹세하기 전 쉽게 부러져 버리는 사랑의 신뢰를 견디기 위해 반대편에 연대를 세워놓으려는 작정이었으리라. 그러나 기질적인 연대가 아니고서야 그 견고함을 개인이 지켜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대에 통용되던 개인이 그 각자의 열맹한 서약을 기대하며 더이상 연대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 나는 어쩌면 양쪽 모두를 잃은 것이다.

연대와 사랑. 동질감으로 묶인 우리의 끈적함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묻는다면 인간의 고독을 잊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겠다. 마치 걸친 술 한잔 처럼, 들이킨 동질감은 우리의 태생적인 고독을 잊게 만든다. 그러나 결코 영원한 잊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