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르르
2024-08-28
번지르르
요 며칠. 정확히 말하면 지난 일주일동안 내 가슴은 여러번 요동쳤다. 냉랭한 차분함과 붕괴된 불안함 사이를 난 몇번을 두근거렸다.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많다. 한 주에 걸친 감상과 예리하게 새길 감각들이 한 글에 모으기에는 글에 기둥이 없다. 이렇게 써내면 울림을 주는 묵직함이 되지 못하고 그저 나날이 적어가는 일기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은 일기를 쓰려고 한다. 통일된 인식을 체화하기보다 그저 기록. 그저 내 하루를 적어. 그렇게 보관. 저장. 다시 돌아보지 않을 한 공간속으로 쏟아내려는 듯이.
일기를 쓰기로 작정했으니 편하게 페이지를 채운다. 제목부터 설명을 해야겠다. ‘번지르르’. 과연 내 삶은 번지르르 하기만을 바라왔나. 겨울학교의 수업을 거쳐가며 꽤나 힘들었다. 수업의 내용도, 또 나보다 큰 사람들을 이끌고 가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스스로 죄어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핑계. 변명일 뿐이다. 난 그 진실된 이유를 이미 상정하고 있지 않던가.
단상에 설 때. 관중앞에 서서 기량을 뽐낼때. 그동안 흘러온 경험. 나의 기억들. 충분히 예상가능한 반응들의 세계로 난 관중을 바라보고 행적을 이어갔다. 혹할만한, 당차고 거침없는 내 말의 움직임이 무대를 모두 잡아먹기를 바랐다. 한 명의 쇼맨. 퍼포먼스였다.
오로지 인상으로 세상을 향유하는 대중들에게 쇼는 기가 막히게 들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선에서 평생을 이성과 씨름하겠다는 그 교수진들앞에 나는 비참해졌다. 그들은 모를 수 없다. 내가 무슨 심정으로 자리에 선 것인지를. 내가 대중을 얕다고 평가한것처럼 그들에게 난 얕은 사기꾼으로 새겨져버렸다. 결국 난 대중의 법칙으로 대중앞에선 그저그런 대중이었던것이다.
번지르르하다. 있어 보인다. 정말 나에게 스며들어있는 문장들일까. 최신의 기술로. 화려한 수식으로 꽁꽁 싸매어 대중앞에 나서기를 습관처럼 하는 그런 사람이었나. 이성과 씨름하겠다던 그 당찬 포부의 아래에 깔린것이 고작 이정도 눈속임 뿐이었나.
반성해야한다. 깊이 반성해야한다. 이 문제를 나는 일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더 크게 반성해야한다. 살면서 쌓아온 연구와 철학 이라봐야 모두 이 번지르르 뿐이기 때문이다.
대중에 대한 혐오도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정말 그들에 대한 혐오와 거부감은 개인적인 인상과 감각에서 유추된 것일까? 필요에 의해 발명된 그런 감정은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정말 내가 대중의 문법과 대중의 법칙으로 자신의 특이성을 세상에 증명하려 함이라면 그 일반성을 혐오함으로서 개인의 위상을 회복하려던 것 아닌가 말이다. 비열하다. 내 속내는 끔찍히 비겁한 나약함이다.
내가 대중을 거부하는 담론을 써올수 있던건 인근에 국소 공동체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개인은 그 국소적 실체를 통해서만 대중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대중은 하나의 개념. 허상이다. 인간은 모두 개인으로. 그 실체로 존재한다. 그 사이에 구름처럼 연상되는 대중이라는 개념은 어떠한 측면에서 거짓이다.
그러니 대중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것. 그들의 거시적 실체를 상정하는 것은 상상속 괴물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대중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 일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 주변에서 인식되는 모든 실체. 명확히 interaction이 가능한 개인들을 하나 하나 사랑하는 것이다.
반성하자. 진실성을 되찾아야한다. 정신의 예리함과 몰아치는 정념은 그에 수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성을 일반으로. 대중 일반으로 여전히 느껴야한다. 더 나은 하나의 개인을 위해. 더 이상적인 나 자아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