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스즈키 유이
2026-01-25
00년생 작가 스즈키 유이가 2025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소설이다. 최근 한국어 번역본이 출판되었고, 이동진 평론가의 이달의 베스트북에 소개되며 큰 관심을 받았다.
흥미로운 출발점
소설은 괴테 문학의 일본 최고 전문가인 도이치를 주인공으로 전개된다. 가족과 외식을 즐기던 중, 그는 홍차 티백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라는 괴테의 명언을 발견한다. 진짜 괴테의 말인지 확신이 서지 않은 그는 앞으로 있을 TV 프로그램의 마지막 멘트로 사용하기 위해 정확한 출처를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제목 자체가 일종의 독일식 농담이다. 괴테가 이미 모든 것을 말했기 때문에, 명언을 인용할 때 출처를 모르거나 사실은 자기 생각일 때도 '괴테가 말하길…'이라고 붙이면 설득력이 생긴다는 식이다. 이런 위트 있는 설정과 학자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흔치 않은 구성에서 어딘가 동질감과 매력을 느꼈다.
세련된 필력
전반적으로 문체는 세련되고 읽는 맛이 좋다. 젊은 작가임에도 필력이 훌륭하며, 지적 허영을 즐기는 독자라면 마음이 사로잡힐 문장과 메시지가 뚜렷하다. 제목부터 대문호의 명언인 만큼 다양한 작품의 구절들이 인용되는데, 익숙하지 않다면 다소 피로할 수 있겠으나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좋은 장치라고 생각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여러 차례의 반전이 펼쳐진다. 쉽게 예상하지 못한 반전들이 내용의 지루함을 방지한다. 초반에는 필력으로 긴장감을 이어갔다면, 후반부로 가서는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으로 그 속도감을 유지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다.)
시카리의 도발: 포스트모더니즘의 봉기
도이치의 친구이자 동료로 나오는 시카리는 작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작품들에 날조와 오인용을 의도적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다른 가명으로 해당 사실을 폭로하며 학계에 큰 충격을 준다. 그는 세상에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 특히 학계는 정확한 인용과 출처를 중요시한다. 강한 규칙이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은 붕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규칙이 학계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학자의 새롭고 자유로운 생각을 가로막기도 한다. 새로운 작품 하나를 쓰기 위해 여러 개의 다른 작품을 참고문헌으로 적어야 하는 것은 매우 피로한 일이다. 시카리의 도발적인 행동은 이런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행태에 봉기를 든 것이며,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 구조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관습주의 사이의 충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모든 학자는 기존의 틀을 얼마나 채용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완전히 채용하면 지루하고, 모두 거부하면 고립된다. 결국 우리는 그 사이의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도이치의 내면: 투사된 욕망
작중 또 다른 갈등 구조는 도이치 내면에서 발견된다. 그는 괴테의 열렬한 팬이며, 학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문의 열렬한 팬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괴테의 방대한 업적 중에서 도이치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괴테는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탐닉하고 배우며 흡수하기를 원했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지배욕이자 '보편자'에 대한 욕망이다.
그러나 도이치는 괴테의 이런 점을 존경한 것이 아니다. 이 욕망은 이미 도이치 안에 있었다. 그는 단지 이 욕망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괴테에 투사하기를 선택했고, 괴테의 말을 빌려, 그의 작품을 빌려 도이치도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이 구조가 학문을 이어가는 강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수학하는 사람은 논리 구조의 근본 원리를 알고 싶어 하고, 물리를 하는 사람은 우주 만물의 원리를 질문하며, 철학하는 사람은 세상과 인간의 이치를 찾고자 한다. 이러한 지성의 환원주의는 물론 성공할 수 없지만, 칸트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강한 원동력이자 본성임은 부정할 수 없다.
나 역시 지성 일반의 가능 조건을 찾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 길에 서 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허상이거나 자기망각의 한 종류임을 깨달아도 그것을 거스를 수는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선택의 주도권을 독립적으로 쥐어 책임을 지는 것뿐이다. 도이치가 깨달았던 것처럼, 외부로 투사되는 것들은 결국 자기 내면으로 돌아와야 한다.
아쉬움
이 책은 '명언'이라는 키워드로 질서와 붕괴, 권위와 주도성 같은 흥미로운 관계들을 포착한다. 현대에 나오는 가벼운 소설들과는 분명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 스스로, 또 추천평에서 고전문학과 비교하는 데 있어서는 회의적이다. 필력은 좋으나 단순히 읽는 맛이 좋다는 수준에 머물러, 제기하는 담론의 치열한 마찰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다. 인문학 소설을 자처한다면 내면의 충돌과 고민, 자아의 변혁에서 긴장감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정작 이 긴장감은 외부의 스토리 라인에서 빌려온다. 동료의 제자가 딸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이 앞서 말한 긴장 구조에 본질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이와 별개로 시대적 배경을 감추기 위해 '스마트폰'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 보란 듯이 '유튜브' 같은 용어를 쓰는 것도 겉멋이 조금 들어 있다고 느끼는 포인트다.)
던지는 메시지와 구조는 매력적이나 그 알맹이가 부실하다고 느껴진다. 아직 젊은 작가이기에 앞으로의 작품에서 더 풍성한 논의들로 채워지길 기대한다.